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4식 37mm 속사포 (문단 편집) == 실전 == 기존의 일본군이 보유한 대포들보다는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군은 일단 여기서 만족하고, [[치하]]의 방어력도 중거리에서 94식 속사포의 포탄을 전면장갑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지정하는 등 '''일본군 대전차포의 표준'''으로 한동안 군림했다. 당장 3,400여문이라는 많은 생산량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어져서 신형포탄을 사용한 화력증대가 불가능하므로 1941년에 포미를 강화한 1식 37mm 속사포 개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1식 기동 47mm 속사포]]가 개발되는 등 후속 대전차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의 고질적인 무기부족 문제는 94식 속사포가 퇴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94식 속사포는 일선에 남아 [[스튜어트 전차|스튜어트 경전차]], [[마틸다 II]] 등 일본군 입장에서 강력한 [[경전차]], 보병전차를 계속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포탄은 튕기고 그 다음에는 [[너는 이미 죽어 있다|속사포와 운용요원이 함께 죽는 일만 남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지속되어서 나중에는 75mm 전차포와 전면장갑 60mm를 자랑하는 [[M4 셔먼]]을 상대하다가 박살나거나, [[만주 작전]]때는 [[T-34 전차|T-34]]나 [[IS-2]]를 상대로 포격한 다음 개박살나는 것으로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1선에서 활약했다고 쓰고 '''학살당했다.''' 이후 소련군에 의해 노획된 포들은 50만명을 무장시키기 충분한 다른 노획 무기와 함께 [[만주]]에 침투한 [[팔로군]]에게 제공된다. 일부는 [[폭격기]] 요격을 위해 [[Ki-45]]에 탑재되었다. 항공기를 상대로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수동 장전인 탓에 연사속도가 느렸기에 연사가 가능한 Ho-203 기관포로 교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